미루고 미뤘던 방구석 서버의 포맷을 지난 달에 한 이래, 한동안 별 이유도 없이 뭉그적거리고만 있었다. 서포트 기간이 옛날에 지난 Ubuntu 12.04 를 밀어버린 직후 곧바로 16.04 를 깔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필요하다 생각되었던 잡다한 것들도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추가해 갔다. 하지만 WordPress 만큼은 불과 며칠 전까지도 설치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왜였을까, 무언가 글을 적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부질없음을 느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엔 내가 쓴 글을 남들이 봐 주는 것이 좋았다. 그 다음엔 내가 쓴 글을 내가 보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시기가 왔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손과 혀를 놀릴 필요 없이 머릿속 생각들만 곱씹어도 오롯이 나라는 자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글쓰기를 꿈꾸었을 정도로 여렸던 나의 이상과는 달리, 말과 글의 본질은 결국 타인과의 마찰과 충돌, 그리고 일방적인 전달과 호소일 뿐이었다. 인생을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가슴 속의 줏대가 꺾이기에는 충분한 경험을 나는 해 왔다. 어차피 사람은 누군가와 진정으로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슨 도구를 쓰건 간에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와서 이 오래되어 버벅거리는 베어본 컴퓨터에 WordPress 를 다시 설치한 이유는, 결국 나 자신에게 공감하기 위해서였다.

뇌세포를 휘젓는 온갖 알 수 없는 관념과 상상과 감정들을 어설프게나마 글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스스로에게조차 공감하지 못 하고 휘어져 가는 또 다른 나를 향해, 언젠가 이 더럽지만 순수한 낙서를 들이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절박함을 느꼈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거울이자 척도, 그리고 발판이 될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일면 어이없는 계획을 만들고 실현해야만 비로소 내가 통 속의 뇌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생존 본능까지도 느꼈다.

요약하자면, 나는 다시 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나는 썩은 토사물까지 그러담아 재활용해야 할 만큼 절박하진 않다는 점이다. 보다 나은 지금의 나 자신을 기록하기 위해, 기존의 데이터는 굳이 옮겨담지 않기로 했다. 흔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들 하지만, 새 부대를 만들었다면 이 김에 새 술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