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 는 인간의 모든 문화현상의 기원이 놀이에 있다고 역설한 저서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로 유명하다. 놀이가 문화의 한 요소인 것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평론가인 로제 카유아 (Roger Caillois) 는 그의 저서 ‘놀이와 인간 (Les jeux et les hommes)‘ 를 통해 호모 루덴스의 이론을 발전시켜, 소위 말하는 놀이의 4대 요소를 정의했다.

  • Agon: 경쟁 (Competition)
  • Alea: 기회 (Chance), 운 (Luck)
  • Mimicry: 모방 (Mimesis), 역할 (Role Playing)
  • Ilinx: 소용돌이 (Whirlpool), 현기증 (Vertigo)

Agon

Agon 은 일정한 규칙 안에서 모두가 투쟁,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참가자들에겐 공정한 규칙이 주어지며, 명확한 승패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경쟁 자체를 통해, 그리고 승리를 통해 성취감과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축구나 야구, 레이싱 같은 예를 들 수도 있지만, Agon 의 정의에 가장 정확히 부합하는 것은 바둑이나 체스 같은, 규칙이 단순하면서 외적 변수가 거의 없는 게임이다. 참고로 규칙이나 승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놀이도 생각보다 많다. 그네, 썰매, 실뜨기, 모래성 쌓기 등등…

Alea

Alea 는 라틴어로 ‘주사위 놀이’ 를 의미한다. 실력과 노력이라는 내적 요소 외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이 곧 운이다. 승패 여부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행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몰입감을 준다. 로또와 슬롯 머신을 비롯한 순수한 도박이 가장 직접적인 예이지만, 윷놀이나 가위바위보 같은 것들도 본질적으론 Alea 다.

Mimicry

모방이란 뜻이지만 역할 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실제 세계에서 자신이 (당장, 혹은 쉽게) 하지 못 하는 역할을 맡아 체험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낀다. 가장 쉽게는 소꿉놀이를 떠올리면 된다. 아빠, 엄마, 자식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보면서 새로운 감정과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자칫 롤플레잉 게임 같은 것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심지어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 나오는 캐릭터의 코스프레 역시 Mimicry 에 속한다.

Ilinx

혼란 및 착란 상태를 기반으로 하는 놀이. 소용돌이나 현기증이라는 단어의 의미만 가지고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이 개념은, 실제로는 ‘아찔함’, ‘짜릿함’ 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하다. 가장 좋은 예는 롤러코스터인데, 롤러코스터를 타고 마구 도는 과정에서 어지럽지만 짜릿하고 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놀이로 인식한다. 회전목마, 번지점프, 스키점프, 심지어는 마약 복용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꼭 이런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밀리터리 FPS 게임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자신의 주변에 포탄이 떨어지고 전장이 뒤흔들릴 때의 느낌을 생각해도 된다. 고도의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요구되기 때문에 ‘몰입’ 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경우에 따라선, 게임에서 패배할 것 같은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역전할 때라던지, 직접 생각했던 전술이 적에게 완벽히 먹였을 때 느끼는 ‘희열’ 의 개념과 연결짓기도 한다.